Ⅱ . 淵蓋蘇文의 집권과 귀족 연립체제의 붕괴
642년 정변을 통해 영류왕과 반대세력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의 등장은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귀족 연립체제로 유지 되고 있던 고구려 정국운영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먼저 연개소문 집권의 배경으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려 한 조치로 보인다. 내성사신(內省私臣)이자 대장군인 이찬 김용춘에게 정사를 위임할 만도 하지만 그는 아직 오십대로 다른 원로 귀족들에 비해 권력 핵심부 내에서의 정치적 지도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여왕의 왕위계승이 문제되던 시점에서 왕의 친척인 용춘이 정
귀족사회의 동요
일찍이 고려의 귀족세력은, 특히 성종이래 우리나라의 정치·사회·문화를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문종대에는 그 황금기를 이루어 놓음으로써 한때 새 역사발전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사회의 전성기인 문종 이후 의종대에 이르는 귀족
세력은 內地로까지 진출하게 된다. 黃巢의 亂을 계기로 귀족세력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안․사의 난의 경우 화북 지역만이 전란에 휩싸여서 강남의 경제력에 의지하여 門閥貴族들은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황소의 난은 중국 전국토를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렸고 문벌귀족들을 재기할
귀족과 관리들 중심의 신분체계 정비가 단행되었고 이제는 ‘부수적’ 존재인 지방 읍락사회의 지배층에 대한 신분 체계 정비도 따랐을 것이다.
고위 귀족들은 대개는 과거 서라벌 신지(臣智)의 후예들로서 이사금이나 마립간의 후손이었다. 사로국의 발전과 더불어 중요 관직을 담당하며 신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