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여를 낳았다. 균여는 강보에 싸여 있을 적부터 그의 아버지가 말로 전수하는 《화엄경》의 원만게(圓滿偈)를 하나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5세에 종형(從兄) 선균(善均)을 따라 부흥사(復興寺:황해도 금천군 남쪽에 있던 절)의 식현(識賢)을 뵙고 출가하였으나 식현의
Ⅱ. 균여의 사상(思想)
1. 시대적 배경
균여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게 좋다. 정치 사회적 배경과 불교 사상사적 배경이다. 정치적으로는 신라천년의 사직이 붕괴되고 새로운 고려 왕조가 탄생, 정착되어 가던 과도기에 균여가 살았으며, 단지 그런 시대에
한다고 말하는 구절에는 충간의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명분과 실리가 일치해야 한다는 유교적 정명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평안해질 수 있겠는가에 대한 작자 자신의 견해를 요약, 결론 내린 대목으로 화자의 이상과 염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
6.1.1 건국신화의 재현
◆ 건국신화의 재현 과정
- 신라 말 :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이 약화 , 항거 세력이 도처에서 나타남
- 진성여왕을 분기점으로 신라는 영토와 주민을 보존하기 어려운 처지로 떨어지고, 전국이 군웅할거의 터전이 되었다.
- 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