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장 중요한 전례음악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존중되는 성가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600년경부터 각 지역의 다양한 성가들이 계속 수집되고 창작되는 과정을 거쳐서, 현재 서양의 모습이 틀 잡히기 시작했던 서기 800년경이 되어서야 완전한 모양을 갖추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양음악의 원천
중세란 일반적으로 4세기에 시작되는 게르만의 대이동부터 15세기 비잔틴 제국의 멸망까지를 가리킨다. 봉건제도와 장원제도, 기사제도 같은 사회적 체제아래에서 크리스트교를 문화적 중심으로 하여 크리스트교 기반 위에 게르만의 전통과 로마, 그리스의 문화가 융합되어 새로운 문화를 이룩하였다.
2. 그레고리오 성가의 탄생 과정과 배경
서양 음악사에서 그레고리오 성가가 등장한 시기는 중세 시대이며, 이는 고대 로마가 멸망한 시기인 5세기부터 문예 부흥의 시기인 15세기경까지를 뜻한다. 이 시기는 정치와 문화에 있어 강력한 기독교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이처럼 종교가 지배한 중
리우스III교황은 프랑스 루이VIII의 도움을 얻어 감독들이 이단들을 벌주게 하였다. 알비파는 수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레데릭II황제는 1220년과 1224년에 법령을 발표하여 이단들을 화형에 처하게 하였다. 1231년 그레고리IX 대왕 때에는 재차 화형법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세속적 집행관이 처형한다
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는 이 회의에 대한 결정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가이샤라의 바실(Basil of caesarea, 330년경-379), 닛사의 그래고리(Gregory of Nyssa, 334년-394),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29/30년-390) 등의 “위대한 갑바도기아인들”이 그의 업적을 계승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