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의 만국공법 수용에 관한 연구, 진단학보 제87집, 진단학회, 1999, pp. 25-26.
만국공법의 수용이 현재 우리가 편입된 범세계적 국제관계의 근원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상 소수의 개화파 인물을 중심으로, 정치외교학의 한 분야인 외교사, 국제관계사의 영역에서 소수의 학자에 의해 다루어
서론: 비스마르크 체제를 논하기 전에 (외교의 궁극적 목적)
외교란 일반적으로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 자국이 타국과 교섭하는 경우의 기술 또는 그 활동을 말한다. 국가적 이익이란 그 국가의 자유·독립과 안전을 유지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의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 들의 역사인식은 깨어난다. 여기서 살펴볼 역사 인식은 평범한 대다수의 중국인들, 즉 민중들의 역사인식과 중국을 움직이는 국가적 수뇌부들의 역사인식이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러하듯 민중들에게 역사란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서부터 ‘자신들
관계사를 미래 지향적인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한일관계의 이러한 국면전환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대일 대중문화 개방을 포함한 과감한 선제적 대일 포용정책에 의해 가능했던 만큼, 이번 교과서 파동의 재현은 `밀월 속에 싹튼 일본 측의 배반`으로 인식되는 것
국제 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했다. 배상금 문제는 위원회를 구성해 위임하기로 했다.
이다. 얄타회담은 대전 중 개최되었던 세 강대국 수뇌들의 여러 회담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후에도 세 강대국 간의 협조와 화합이 계속 될 것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져 서방측에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