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이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예부터 많은 침략과 식민지배 아래 상한 마음을 가진 백성들이 많이 있는 그런 작은 나라였다. 한 선교사의 말처럼 조선인들은 실로 감성이 있고 종교에 대한 열의가 있었으며 그 열의는 불교, 도교, 유교 등의 종교 내지 사상을 받아드리고 민간에서는 샤머니즘,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전해진 것이며, 알렌의 입국을 선교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교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평양 대부흥 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먼저 백낙준에 의해 이루어졌다. 백낙준, 『한국개신교사』(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교회를 떠난 수가 적었으며, 흩어졌던 교인들이 다시 돌아와 "주의 사역이 놀라운 방식으로 백성들 가운데 확산되고 있었다." 케이블은 1904년 북장로교 보고서에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기회의 문이 이전보다 더욱 활짝 열렸다. 이교주의에서 대거 탈출하여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놀라운 운동이 일고
교회사,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6. 208-224.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만든 이 교리들을 신봉하고 있다.
영국의 기독교가 점차 침체로 빠져서 모두가 가능성이 없다고 할 때, 또 하나의 위대한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독일에는 경건주의가, 미국에서
그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을 뿐더러 일부 선교사들 중에 기독교신앙의 본질과는 무관한 서구적 문화의 옷을 마치 기독교신앙의 체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우월한 문화로 생각하고 한국토양에 심으려 했던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우리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