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교주의 논쟁과 전체주의 시론
4.1. 기교주의 논쟁
위와 같이 1935년을 기점으로 김기림은 자신의 초기 시론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체시론을 모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바로 기교주의 논쟁이다. 기교주의 논쟁은 이러한 가운데 촉발된 임화의 모더니즘
김기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본명은 김인손(金仁孫)이며 김기림은 필명이다. 아명은 김인손(金寅孫), 아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최재서와 함께 대한민국 문학계에 모더니즘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비평 및 시작 활동을 한 사람이다
Ⅰ. 김기림 알기
ⅰ. 약력
김기림 (金起林 : 1908~ ? )
1908년 함북 학성 출생
1921년 서울 보성고보 중퇴
1930년 일본대학(日本大學)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조선일보』에《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발표, 등단
1931년『조선일보』평론《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발
김기림이 1930년대의 시단을 소묘했던 것처럼, 우리는 김기림의 시론을 다시 한번 소묘해 보고자 한다. 당시 제국주의의 물결 속에서의 일제의 주권과 자유 탄압 속에서, 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물결 속에서 1920년대 후반 신경향파와 카프문학의 대두는 당연한 시대적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
이런 양상은 1935년의 기교주의 논쟁에서 더 구체화되면서 전개되는데, 김기림은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1935.2)에서 기교주의를 “시의 가치를 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체계화하려고 하는 사상에 근저를 둔 시론”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심미주의나 예술지상주의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