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은 이 글에서 기교주의를 “시의 가치를 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체계화하려고 하는 사상에 근저를 둔 시론”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심미주의나 예술지상주의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30년대 전반기를 통해 개별적으로 형성된 이 기교주의는 편향화되어 이미 그 역사적
시 창작 동인 활동이 보여준 시의 순수 지향에서 잘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시적 기법의 실험과 주지적 태도, 주관적 정서의 절제, 도시적 감각과 시적 심상의 구성 등 모더니즘적 시의 경향을 보인다. 모더니즘 시론을 도입하고 주도했던 김기림은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 아래서 시가 이뤄진다고
근대를 맞이하고 육화한 우리에게는 절실한 것인데, 이러한 지점에서 ‘근대의 원풍경’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론을 확립하고자 했던 김기림을 읽어내는 일은 유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고에서는 김기림의 시론을 중심으로 그가 파악한 근대란
논쟁은 논자의 논의를 집중적으로 구명하는 맥락에서 연구되어왔다. 이런 논의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한계전과 김윤태, 모더니즘 일반에 대한 임화의 비판을 중심으로 한 서준섭, 박용철을 중심으로 한 김윤식과 한계전, 이명찬 등의 글을 들 수 있다.
문학사적 의
체포되어 평양감옥에서 이광수(李光洙) · 계광순(桂光淳) 등 납북 인사 33인과 함께 수감되었다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폭사당하였다. 이 장에서는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서도 비교분석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