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이 쓴 한시는 형식의 내부에서부터 이전 한시의 방식을 파괴했다. 당시 양반들이 갖고 있던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것을 해학적으로 비튼 것이다. 형식의 파괴성에서 볼 수 있는 김삿갓의 주류 사회에 대한 냉소적 태도는 그의 시의 풍자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김삿갓이 방랑 여정
김삿갓의 작품들의 특징과,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또한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김삿갓과 같은 유랑지식인들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1. 방랑시인을 대표하는 이름, 김삿갓
우리가 알고 있는 김삿갓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으로 출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몸을 재빨리 피했다. 그후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잡혀 직함을 받기도 하고 또 농민군의 참모 김창시가 잡혔을 적에 그 목을 천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려 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김익순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했다. 김삿갓의 집안은 폐가가 될 수밖에 없
김삿갓은 자기 집안의 사정을 모르고 자람
➅ 장원 급제한 후 가문의 내력을 알고 죄책감에 빠져 방랑 생활을 시작함.
3. 김삿갓의 생애
모든 희망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걸식하며 언문시,
국한문혼용시,해학시,고풍과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시를
지었으며 특히 풍자, 해학시는 전무후무한 절
방랑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몰골은 천한 걸인이었으나 그가 받아온 양반 교육은 그의 풍모에 엿보였다 한다. 그는 삼 년만에 집에 돌아와 차자 익균을 낳기까지 머물다가 다시 방랑의 길에 나섰다. 가족은 충청도 해안 가까이의 결성에 살고 있었는데 김삿갓은 가끔 나타나 가족의, 특히 어머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