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약전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고려 상장군 금용(金用)의 후손이며 덕녕부윤(德寧府尹) 안세(安世)의 8대손으로 증 이조판서 열의 아들로 명종 9년(1554)에 인동 남산에서 태어났다.
7세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 부친을 잃고 11세때 학자인 신당 정붕의 아들 정각(鄭慤)이 보고 "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
1. 저자와 생애
-『여씨향약』은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孫呂氏鄕約)』의 약칭으로, 이는 11세기 초 중국 북송(北宋) 때 남전여씨(藍田呂氏)가 만든 향약을 주자가 증보·가감한 것이다. 이를 1518년(중종 13)에 김안국(金安國)이 번역한 책이 바로 조사대상인 『여씨향약언
김안국‧강순희(2004), 이병희 외(2004), 이동임‧김상호(2005), 김주봉‧박민숙(2006), 이동임 외(2006), 최영섭 (2007) 이상준(2008) 이만기(2008) 등이 있다.
주로 자격증에 대한 임금효과 및 고용효과를 추정하였는데 대부분이 한국노동 연구원에서 발표하는 패널자료를 활용하여 추정하였다. 이동임
김안국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간행한 "여씨향약언해"의 반포로 잡는다. "향약"은 "주자대전"에 실려 있어 주자학과 더불어 고려 말에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 주해가 없어 민간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주자학적 이상에 몰두하며 교화에 열성적이었던 김안국이 "여씨향약" 언해를 붙여 간행하였다.
김안국이다. 그는 이 시 말미에 “최군이 취하였는데, 문득 <정과정>을 불렀다. 음조가 청장하고 강개하였다”고 밝혔다. ‘강개하다’는 단어는 슬픔과 함께 분하고 섭섭함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한다. 더군다나 술까지 취한 분위기를 감안 한다면 섭섭한 마음이 더욱 강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