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이 「회사설(會社設)에서 한 말이다. 김옥균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 변혁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진적인 정치개혁을 시도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개화사상의 주도자이자 갑오개혁의 선도자로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김옥균의 정치와 사상을 김옥균의 일생과 관련하여
개화사상을 주제로 한 애국․독립가 유형이다. 4․4조의 대구형식으로 ‘쥬독립’, ‘진츙보국’, ‘문명개화’, ‘애국’, ‘교휵’, ‘동심’, ‘롱공샹’등의 용어들이 표상하는 의미는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로 온 국민이 합심단결하여 교육에 힘쓰고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세계 만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으로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청국과의 종속 관계를 청산하고자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으로 일본공사관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짐. 현재 많은 글이나 사람들은 ‘친일파’의 유래를 갑신정변 단계의 개화파에서부터 끌어오고 있으며 이는 갑신정변 주체인 김옥균 등의 변법개화파가
개화 저지와 왜적 소멸에만 투입한 것이 동학혁명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던 신분 계층의 붕괴 현상을 표면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위 경군을 수차례 격파하여 하층민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실감케 한 것만으로도 큰 의의를 갖는다. 동학혁명은 하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