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만주항일투쟁
1) 동북항일연군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김일성은 양징위가 이끄는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여 본격적으로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에서 동북항일연군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30년대 초부터 중국 공산당 양징위(楊靖宇)가 여기저기에
만주로 이동해 살았다.
그 후 청년이 되자 고려 공산청년회 등 공산당 단체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이끄는 동북항일연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함경남도 혜산진의 보천보를 점령했었던 이른 바 보천보 전투이다. 이 보천보 전투로 인해 김일성
김일성은 중국에서 성장했으며,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국에서 항일유격활동을 했으며, 중공군 아래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자주적, 주체적 활동이면에도 항상 명분적으로라도 중공의 동북항일연군이라는 군체제 내에서 활동했으므로 그 연관성도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
김일성’이라는 한 개인의 발자취로와 뗄래야뗄수가 없으며, 남한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소련의 계획에 의한 과정이었음을 알리고 싶었다.
해방 전 김일성의 활동
[김일성에게 해방후 권력상승에 도움을 준 2가지 사실들..]
36년 7월 동북항일연군 제 1로군 6사 사장시절 (24세) 김일성은 해
김일성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가는 경향을 보여 왔다. 황장엽도 김정일에 대해서는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김일성을 평가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일성 연구에서 오랫동안 최대의 쟁점이 되었던 것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로 군림한 김일성이 일제시대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