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남북교류와 문화예술교류
1. 음악
1985년 제1차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시 우리 대중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제3국 개최행사로서는 1991년 남측 중앙국립관현악단 52명과 북측 평양음악무용단 등 60명이 참가한 통일예술제(’92.8.17~18, 사할린)가 있다.
1990년의
남북교류와 방송교류
1. 개척기 : 1998~정상회담 전까지
방송교류에 대한 논의는 1957년에 북한전국기자대회준비위원회가 남한언론인을 초청한 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간헐적으로 또 끊임없이 남한과 북한이 언론교류를 제의하였지만 성사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통일정책의 연장
인적·물적교류를 제안해 북한이 이를 수용·재개하다가 일방적으로 북한이 그러한 합의 사항을 중단·비난·대화를 거부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연이은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국지적 도발 행위 발생으로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고 최근 북한 ICBM 대륙간 탄
방송법에서는 방송의 통일의무가 반영되지 못했다.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방송법 제4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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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남북방송교류의 논의와 전개
남북한 언론교류의 공식제의는 1957년 5월 15일 북한측이 “남북기자 및 언론인들의 교류와 각종 출판물들의 전
남북영화합작
북한은 1985년에 맞이한 해방 40주년, 당 창건 40주년을 계기로 84년 11월 최초로 소련과의 합작 영화제작을 시도하였다. 영화제작의 합작시도는 때늦은 감이 들 정도로 소련과 북한은 문화교류를 오랫동안 추진해 왔다. 해방직후 소련과 북한간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친선협회”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