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의 방법
中日戰爭 이후,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론을 전면화하고 있지만, 내선일체의 방식을 둘러싼 입장이 완전히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내선일체론의 담당자를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는 내선일체에 관한 논의의 범주를 한정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일본 연구자 宮田節子는
조선상륙은 이미 1894년 그 전신인 입정안국회의 이토오 찌레이(이동지령)가 인천을 통해 입국, 조선국왕에게 올리는 타나카 찌가쿠의 편지와 저서 불교부부론을 전달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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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녹기연맹의 조직변천
녹기연맹의 첫 번째 조직 개편은 1936년에 이루어졌
건설한다’는 국가주의적 일련교도(日蓮敎徒)의 사상운동단체였다.
녹기연맹은 경성제대 예과 교수 쯔다 사카에(津田榮) 일족이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며 주도해 갔던 민간단체로서, 자발적으로 조선인의 황민화와 전쟁동원을 목표로 설정하고 전시체제하 선전, 교육 및 출판활동을 수행했다.
것을 주장하면서 맹원 총회를 열고 문호개방, 지부설치 등 조직의 확대를 꾀했다. 그래서 초기의 카프 구성원은 예술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조직이 확대된 후에는 비예술인들이 많이 가담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에 제3전선파인 동경유학생 조중곤, 김두용, 한식, 홍요민, 이북만 등이 등장하게 된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을 일제의 영속적인 식민지로서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일관된 방향으로 조선을 ‘지배’해나갔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국내의 사정과 조선 민중의 반발, 국제 여론 등의 요인에 따라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는 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