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적 의의,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와 같은 정통 사대부와는 다른 향촌사족이라는 작가의 특별한 신분, 그리고 궁핍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서술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 가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누항사> 등은 분명 크게 주목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점을 조명하고
점으로 부각될 때마다 그 결과에 따라 극심한 당화(黨禍)를 겪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황극탕평론(皇極蕩平論)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문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16세기에 당시풍(唐詩風)이 시단을 풍미하였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17세기 초에는 명대(明代)의 진한고문풍(秦
가사는 노래라는 말과 연관지어 그 뜻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 ‘사’에 대해서는 ‘辭’를 사용한 것과 ‘詞’를 사용한 것이 있다. 두 글자가 모두 사용되었기에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김광순, 김병국, 김선기 외,《한국문학개론》, 景仁文化社, 1996, p.161.
이에
1. 가사의 명칭과 개념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시대 국문시가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문학 갈래로써 특이한 형태와 표현수법을 갖춘 시가(詩歌)이다. 가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발생 초기에는 주로 양반사대부의 전유물이다시피 하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작자층의 확대가 이루어져서 서
고산은 1587년(선조 20)에 서울에서 태어나 1671년(현종 12) 85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불우했으나 문학적으로는 뜻 깊은 한 평생을 살다 갔다. 그의 몸집은 작고 체질도 연약한 편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엄숙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가진 꼬장꼬장한 선비로서 평생토록 《소학》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