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의 문제점.
① 鄕里와 선비의 단결로 형성된 중류사회를 중앙정부에서 통제하기가 불편해짐.
② 이러한 당인들이 서로 무리를 지어 공격만 하였고, 정치적으로 정책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소 행정상의 혼란만 가중시킴.
③ 사회적으로는 도덕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능력의 배양은
당인과 구영을 가르쳤다. 당인과 구영은 심주, 문징명과 함께 오파의 사대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심주의 가장 출중한 제자였다. 그는 심주가 죽고 나서 스승의 유업을 이어받았고 그의 주변엔 아들과 조카를 포함해서 수많은 문하생들이 모였다. 모두 오파의 근원지인 소주에
당인(唐寅)·구영(仇英)과 같은 몇몇 저명한 화가들은 오파의 유명인사들과 교분이 있기는 했지만 때때로 그들의 양식과 관심 또는 소재가 달랐기 때문에 이들과 같은 파로는 규정되지 않는다.
심주[沈周]
자는 계남(啓南), 호는 석전(石田)·백석옹(白石翁).
심주는 강남(江南)의 서화에 정통한 문인 가
당인소설(唐人小說)}에는 68편이 실려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책은 왕벽강의 {당인소설}이다.
(1)초당 성당시기 이 시기는 육조 지괴에서 당대 전기로 옮아가는 과도시기이다. 작품수는 많지 않고 아직도 육조의 여풍(餘風)이 남아 있다. 이 시기의 전기소설로는 왕도(王度)의 <고경기(古鏡記)>,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