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한 사람들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1929~32년 사이에 있었던 조공 재건운동의 구체적인 방안 및 양상을 정리해 보겠다. 특히 기존연구에서 ‘화요파’로 알려진 金丹冶 등의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및 1930년 하반기 상해를 중심으로 한 김단야 등의 ‘꼬뮤니스트그룹’의 활동,
당재건운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당재건운동에 앞장서던 사회주의운동가들은 당시 일본과 우리나라 반공체제에 탄압을 받으면 역사 속에 잊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발표에서 우리는 당재건운동의 배경과 초기 당재건운동, 당재건운동을 펼친 대표적 그룹인 이재유 그룹과 그 후의 경성 콤그룹에
운동의 전부였을까? 해방 운동에는 사회주의운동도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해방 이후 반공체제에 의해 철저히 역사의 뒤편에 감춰져야했던 사회주의운동가들도 당당한 우리의 민족투사였다는 것을 다시 각성하면서 오늘은 많은 사회주의자들 중에 ‘이재유’와 ‘이재유 그룹’의 활
당·인민당·신민당 좌파가 연합하여 남조선노동당을 결성, 박헌영은 부위원장직을 맡았다. 46년 12월 남조선신민당·조선인민당을 조선공산당에 흡수,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하였으며 초대 부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신탁통치 지지 등 공산주의 활동을 지휘하다가, 1946년 9월부터 미군정의 지명수배를
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조선공산당이 창당되기 이전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조선공산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Ⅰ.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
1. 사회주의 이념의 수용
192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이념이 도입되고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