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론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당쟁론에 대한 반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곽(호 자산)‧석정수부 같은 사람의 이론이 그것이다. 안곽의 경우는 민족정신을 부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석정의 경우는 3.1운동 이후 자의식이 강화된 한국인을 설득하기 위한 보다 차원 높은 이론의 창
사림의 세력이 강화되어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정국이 되었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로 한번도 정복왕조가 들어서지 않아 귀족세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에 국왕과 재상에게 눌려 오던 사림들이 투쟁의 대상을 잃고 스스로 분열하여 당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Ⅱ. 조선당쟁(붕당정치, 사림정치)의 정
사림파는 훈구파라는 강력한 상대세력이 있을 때는 단결되었다. 그러나 선조조에 훈구세력이 무너지고 사림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자 사림이 자체 분열하여 붕당이 생기고 붕당간에 당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므로 당쟁은 사림정치의 부산물로 보아야 한다. 당쟁이 유독 조선후기에만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정치운영이 공존과 상호비판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형태를 붕당정치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한국의 중세적 정치운영의 후기적 전형을 이룬다.
초기의 붕당정치는 정치 이념, 학연 등에 따라 조직 상대세력과의 공존을 추구 언론을 통한 비판 허용 공론과 공도를 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