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이전의 박정희 정권(1963-1972)을 가리킨다.
의 유지는 국민의 진정한 지지가 아니라, 강력하고 폭넓은 정치적 억압에 대체로 기반을 둔 것이었다. 유신체제하에서의 인권유린과 정치적 탄압은 그 시기 동안에 이룩한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북학의 대남 도발 회수는 1967년 829건, 1968년 761건이었지만 1969년 134건, 1970년 106건, 1971년에는 58건으로 계속 감소했다. 또한 북한의 대외정책 역시 1969년 하반기부터 전과 달리 일본 및 유럽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미국과의 접근도 모색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위원회, 위의 책, 2~3쪽
통일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있는 시국에서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유신’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국회의 해산과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그리고 현행 헌법의 일부 기능이 정지되었다. 결국 10월 27일 비상국무회의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 대통령의 비
국민투표를 거쳐 유신헌법이 확정되었다. 19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대통령이 재선되고 12월 27일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유신체제라는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다.
2. 개정헌법의 내용
첫째, 대통령의 간선-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둘째, 대통령임기는 6년이며, 중임제한을 철폐.
통일’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 → 통일을 원한다면 유신체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위협!
10월 26일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헌법개정안 공고
1972년 11월 계엄령하에 국민투표 실시, 통과
1972년 12월 27일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유신체제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