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11월 13일 개최된 화북조선독립동맹 晉西北 분맹 결성식장에도 김구의 사진이 손중산.장개석.모택동.카타야마 센(片山潛)의 사진과 함께 걸렸다. 이는 독립동맹이 임정 주석 김구를 민족해방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임정을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주요 동맹자로 설정했음을 반증한다.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서 임시정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 선언에서는 한일병합을 융희 황제(순종)의 주권포기로 단정하고 대신 주권불멸론(主權不滅論) 즉 융희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것은 국민에게 주권을 이양한 것이라는 독특한 국민주권론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와 법치주의를 지향했다.
임시정부가 3.1운동의 산물이고, 둘째 우리 역사에서 수립된 최초의 민주공화정체(民主共和政體)이며, 셋째,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법통성을 가지고 있고, 넷째,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휘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록 매우 약화된 시기를 겪기도 했으나, 민족의 염원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의
민족독립운동시기의 통일전선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으로, 1930년대는 독립운동정당간의 통일전선, 1940년대 임시정부로의 통합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등으로 꾸준히 민족통일전선을 모색했으며 그 후에도 7.4공동성명
독립운동세력 통합의 기본적 제약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민족통합운동은 1910년대 이후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이는 남북통일을 위한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바로 알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통일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