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대상이 같은 말을 쓰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독립운동시기의 통일전선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으로, 1930년대는 독립운동정당간의 통일전선, 1940년대 임시정부로의 통합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우
독립운동세력 통합의 기본적 제약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민족통합운동은 1910년대 이후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이는 남북통일을 위한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바로 알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통일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안은 제38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만 2차례 제출되었다. 첫 번째 안은 신한민주당과 민혁당이 제출한 것이었고, 두 번째 안은 한독당과 민혁당이 제출한 것으로 첫 번째안과 상당히 이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혁
- 1919. 4.11 임시의정원에서 대
. 1942년 11월 13일 개최된 화북조선독립동맹 晉西北 분맹 결성식장에도 김구의 사진이 손중산.장개석.모택동.카타야마 센(片山潛)의 사진과 함께 걸렸다. 이는 독립동맹이 임정 주석 김구를 민족해방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임정을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주요 동맹자로 설정했음을 반증한다.
임시정부의 이동 기간은 8년
- 1930년대 후반 한국의 독립운동계는 우파의 연합세력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좌파의 연합세력인 조선민족전선연맹으로 나뉘어 대립
-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한 좌우파 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독립운동 단체의 통일조직으로 연맹의 형태보다는 단일당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