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11월 13일 개최된 화북조선독립동맹 晉西北 분맹 결성식장에도 김구의 사진이 손중산.장개석.모택동.카타야마 센(片山潛)의 사진과 함께 걸렸다. 이는 독립동맹이 임정 주석 김구를 민족해방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임정을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주요 동맹자로 설정했음을 반증한다.
정당조직의 결성에 대한 움직임은 임시정부의 활동이 침체되는 고비마다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1920년대 전반기 임시정부의 활동이 외교노선에 치우치고, 중국동북지역과 노령지역의 무장부대를 통일적으로 지휘할 수 없게 되자, 1923년 국민대표회를 통해 민족운동의 통일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안은 제38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만 2차례 제출되었다. 첫 번째 안은 신한민주당과 민혁당이 제출한 것이었고, 두 번째 안은 한독당과 민혁당이 제출한 것으로 첫 번째안과 상당히 이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혁
- 1919. 4.11 임시의정원에서 대
독립당(김구.조소앙.이청천)의 결성을 보았는데, 이 모두 임시정부 주변에서 일어났던 통일전선 또는 협동전선의 모색으로 추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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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가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으로 나타난 민족적 총의에 의해 설립되었다. 출범 직후 임정
운동 당시 임시정부가 추구할 이념은 입헌군주주의.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 등, 몇 가지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입헌군주주의는 3.1운동이 광무황제의 독살설과 인산을 계기한 점으로 보아 상정할 수 있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가 거의 자유민주주의적이라는 데에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