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 1931)
-이동기(1932 - 1939)
-말기활동기(1940-1945)
1. 초기활동
- 임시정부의 활동을 국내에 소개한다든지, 혹은 국내사정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의 정보연결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 -연통제·교통국
- 외교활동
- 문제점: 직속의 독립군 없음. 만주·연해주의 독립군 단체들을 직접 통제 못함
Ⅰ. 서론
임시정부에서는 출범 직후부터 1940년대까지 독립운동 방략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한 작업의 성과로 채택된 임시정부의 공식적 문건은 1920년의「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정방침」, 1939년의「독립운동방략」, 1940년의「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 1941년의「대한민국건국강령」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것이다. 1931년 4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 원칙으로 발표한 삼균주의를 구체화한 내용이라고 했다. 후일 국무위원회의 결의만으로 효력이 있느냐의 여부로 의정원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삼균주의가 성립한 시기는 1930년 한국독립당 창립시기와
한국이 독립될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추후 독립된 한국의 장래는 그들과 연계된 좌익 정치인의 수중에 장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하는 국민당정부를 의식하고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나름대로 후원했으며, 이들에 대한 포섭과 사상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
1919년 4월 성립한 상해 임시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그해 9월 15일 3․1운동 직후 서울에서 성립한 한성정부와 블라디보스톡에 성립한 대한국민의회 등 다른 조직을 개헌형식으로 통합하여 나름대로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지방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