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으로 삼고 이름도 ‘시어소’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곳에서 16년간 살다가 승하하셨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한 후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1615년(광해군3)에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 곳을 경운궁이라 부르게 하였다.
경운궁이 왕이 계시는 정식궁궐이 되는 것은
결혼 하였으나, 어린 딸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 과 병마 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였으며 , 해방이 되어도 바로 고국 땅에 오지 못하다가 1960년 초 한국에 돌아와 창덕궁 낙선제에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지내며 치료를 했지만 끝내는 회복 되지 않고 1987년 낙선제 에서 사망 했다고 합니다.
1단원 한국사의 바른이해
1.1 역사의 의미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
궁, 계동궁 등으로 이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또한 을미사변 이후에는 세자와 함께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1897년 2월 25일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8월에 연호를 광무라 고치고, 10월에 국호를 대한, 왕을 황제라 칭한 후 황제즉위식을 갖는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은
어지러웠던 역사의 정가운데에 있는 시기로서 그 의의를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제국의 성립배경과 과정, 그리고 광무개혁에 관하여 대한제국의 성립부터 멸망까지의 현장이 된 덕수궁을 둘러보고 그 역사적 가치와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