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은 일반적이었다. 도 당국에서 파악한 1923년 이후의 재일 도민의 수는 1923년 1만381명, 1924년 1만9천552명이었다. 1931년 3만3천23명, 1938년에는 4만5천950명이었다. 8·15해방 당시는 1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3. 재일 제주인의 시대적 도일배경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제주도민들이 도일한 이유는 어디에
출신 지역은 남부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이주 목적도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노동이나 학업이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의 소유자도 있기는 하지만 그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초기에는 순수하게 학업만을 목적으로 도일하는 유학생의 비중이 높았으나 학업과 노동을 겸하고자 하는 층이 늘어 갔다.
Ⅰ. 1920년대의 신간회
1) 1927년 2월 15일 신간회 창립, 조선일보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조직. 강령 ①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②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③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배제함
2) 1928년 말 지회 수 143개, 회원 2만 명, 1930년경 회원 4만 명
3) 신
Ⅰ. 서론
종래의 통설에 의하면 1910년 한일합병이전 일본에 있던 조선인은 790명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최근의 김영달, 산협계조의 [近代日本の外國人勞動者問題]에 의하면 한일합병이전부터 꽤 많은 수의 조선인이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1880년대 이후 탄광노동자, 철도공사 노동자, 행상인 등
도일이전에 농업에 종사했다. 이들은 근대적인 산업노동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본에서 하층노동력으로서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즉 일본인이 기피하는 부문에 종사한 것이다. 직종을 크게 나누어보면, 토목노동자, 잡역부 및 일용노동자, 탄광노동자, 공장노동자로 볼 수 있다. 탄광노동자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