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돌궐과 연합하는 한편, 국내의 반발세력인 물길족에 대한 지배를 더욱 확고히 하며 국력을 정비했다. 평원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영양왕은 수나라에 대해 적극적인 강경책을 채택한다. 고구려는 요서지방의 전진기지이자, 요충지인 영주지방을 영양왕 9년 2월 말갈인으로 구성된 기병 1만을 보내 선
동돌궐에 비해 군사적정치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서돌궐을 막기 위해 동돌궐을 적당히 지원하여 예속시키는 정책을 구사하였다. 수에 예속되어 그 존재를 유지하던 동돌궐은 수나라가 고구려 원정에 전력을 기울이는 틈을 타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으며, 당조를 건설한 이연과 이세민을 지원하여 수의
동돌궐루유전쟁 후래아파가한 위동돌궐사발략가한소금 국인입타족자니리가한
族子 [z?z?]:족형제의 아들
서돌궐은 아파칸으로부터 동돌궐과 자주 전쟁이 있어서 후에 아파칸은 동돌궐 사발락칸에게 사로잡ㅎ 나라 사람이 그의 친족형제 아들 니리칸을 세웠다.
泥利亦敗死, 子達漫立, 叫作泥?處羅可
동돌궐이 쿠틀룩의 지휘 하에 재건되었다. 쿠틀륵과 톤유쿡 동돌궐이 부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탁월한 정치가였던 톤유쿡이 있었다. 톤유쿡은 중국의 행정관리직을 세습했던 가문 출신이었다. 중국의 교육을 받았던 톤유쿡은 쿠틀룩이 동돌궐의 독립을 이룩했을 때 합류하여 그의 조언자로서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