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문학관과 당시대 정치적 현실을 바탕으로 『동국이상국집』의 편찬 의도와 <동명왕편>에 나와있는 민족의 주체성을 살펴보았다.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은 그 명칭이 고려의 재상 이규보의 문집이라는 의미로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의식 하에 붙여진 명칭이었다. <동명왕편> 역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하지만, 그의 문학은 모두 고사를 사용했으며 만년에는 불교의 귀의했다고도 한다. 이렇듯 그의 생애, 작품과 이론의 세계, 문학관 등에 후대의 연구는 서로 어긋나 있다. 그래서 이후에 본론에서는 이규보의 생애와 작품과 이론의 세계, 문학관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Ⅰ. 서론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 의종 24년(1170) 문신에게 반기를 든 무신들에 의해 일어난 무신난으로 인해 무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벌 귀족의 해체, 지방의 중소지주 계층의 부상, 민중의 역량과 의식의 성장 등 고려 전기와는 다른 변혁의 양상을 보였던 시대를 살아갔던 문인 중
1) 이규보의 삶
1년 만에 복직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함
→ 완전히 삭탈관직, 귀양
→ 복직, 본격적인 문필활동(대부분의 외교 문서 작성)
→ 70세, 금자광록대부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隨太保門下侍郞平章事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禮部事 翰林
동국여지승 람」에 건국신화 수록
* 단군신화를 통해 본 고조선사회 : 제정일치의 사회, 농경사회, totemism, 선민사상의 성립
* 단군신화의 의의 :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
③ 고조선의 사회
* 8조법금 : 반고의 「한서지리지」에 3개 조항만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