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이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한문의 폐지와 국문의 사용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의가 벌어졌으나, 역사의 진행방향은 국문사용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병혁, 위의 책, 368면.)
4. 비평문학의 전개
‘무엇이 문학이며 왜 그 것은 필요한가’라던가, 그 필요에 값
비평문학서인 <파한집>이 나타난다. 이인로는 시적재능은 천부의 것이기에 그 재능의 소산인 시는 자연지취를 지닌 자연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시사하면서도 용사나 환골탈퇴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기교론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다시 이규보에게서 비평문학은 본격적 시론이 전
문학적 성과를 이룩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문학 담당층의 성격이 변모되어 고려 전기의 귀족적인 문학, 사장풍(詞章風) 중심의 문학 현상에 대한 비판과 사회의 현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려는 독특한 문학 풍토가 조성되었다. 특히, 이규보는 이러한 고려 중기의 문학적 전환을 담당한 대표적인 인물로
1) 이규보의 삶
1년 만에 복직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함
→ 완전히 삭탈관직, 귀양
→ 복직, 본격적인 문필활동(대부분의 외교 문서 작성)
→ 70세, 금자광록대부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隨太保門下侍郞平章事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禮部事 翰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