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짧으면 늘려 죽이고, 길면 긴 부분을 잘라 죽인 고대 아테네의 도둑 신화)와도 같은 서구 신화학의 재단에 의해 동아시아 신화의 상당 부분이 비신화적인 내용으로 간주되거나 그 의미가 왜곡되기도 했다. 근대 이래 한때 풍미했던 '중국 신화 부재론'은 당시 서구 신화학의 편견의 산물이었다.
동아시아 역사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야말로 자기 민족 중심의 역사 인식에 대한 가장 철저한 안티테제가 아닐까?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포장하기 위해 일본 및 한국의 역사학이 어떻게 성립했는지, 또 어떤 식으로 고대사를 포장해왔는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리고 일
1993년에 북한은 평양 시내에서 단군릉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그 안에서 단군왕검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김일성의 지시로 장대한 분묘를 조영중이라고 전했다. 이로 인하여 한국 학계에서는 단군릉의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일었으며, 북한이 단군왕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분석하기 위
동아시아 역사속에서의 정치와 신화(요약)
신화와 역사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화에는 신화가 만들어진 시대상황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고대사는 신화적 형식을 빌어 전승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화 그 자체가 역사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신화의 사회적
I/고대사: 임진왜란 (1592)
1.배경:
당시 조선은 양반 사회의 분열 과 군역제도의 문란으로 국방력이 약화 되어가고 있었 고, 16세 기 말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크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대륙 에서는 여진족이 다시 일어나 힘을 키워 갔으며, 일본에서는 도요 토미 히데요시가 100여년에 걸친 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