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했던 시기였으나, 현종의 천보(天寶) 연간에 이르자 장기간 동안 사회 안에 응축되었던 각종 모순이 계속 표출되어 마침내 안사(安史)의 난(亂)과 번진할거(藩鎭割據)를 야기시켰다. 이것이 바로 당대가 전성기로부터 쇠퇴기로 전락해 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안록산(安綠山)과 사사명(思史明)의
고문이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성률과 대우(對偶)만을 추구하는 형식 위주의 변려문(騈儷文)이 판을 치는 사회상을 보고, 효용적이며 자유로운 문체를 추구하여 육조시대 이전의 글을 배우자고 고문운동을 일으켰다. 이것은 고대의 문장체로 복귀하자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1. 한유
韓愈(한유;768∼842)는 字(자)가 退之(퇴지)로 중당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그는 유종원과 함께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복고'를 기치로 삼아, 先秦(선진)과 兩漢(양한)의 산문전통을 계승할 것을 주장하고 文以載道(문이재도)를 강조하였다.
한유는 고문가답게 자신의 시풍을 尙怪(상괴)와
운동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가 몽고와의 전쟁 끝에 강화를 성립시킨 1259년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한 1356년까지 97년 동안을 원 간섭기라 부르는데, 이제현은 원 간섭기의 거의 전 시기를 살았던, 가히 그 시대의 증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본 발표조는 익재가 당대의 현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