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이 얼마나 일본의 재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을 가졌었는가를 알 수 있다.
동학은 외세의 침략에 대해서는 한사코 이를 싸워 물리치려는 강력한 저항민족주의를 정립하여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동학의 민족주의를 더욱 근대적으로 만들어 하위신분층과 농민층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게
농민의 토지소유를 위한 토지제도의 개선 및 개혁, 신분제의 타파 등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실학사상은 후에 갑신정변의 정강정책과 갑오개혁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근간이 되었다.
② 갑오농민군(동학농민군)의 개혁요구
또 하나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갑오농민군의 개혁요구에 있다. 안으로 사
농민전쟁ꡑ의 백주년을 기념하여 수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어 왔다.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한『1894년농민전쟁』1˜5(역사비평사, 1988˜1995)는 농민전쟁의 배경?전개?귀결을 경제?정치?사상
갑오왜란)하여 민씨정권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신정권을 수립하였다. 그 뒤 7월 27일 개혁추진기구로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고,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이 회의총재(會議總裁)에, 그리고 박정양(朴定陽)·김윤식(金允植)·조희연(趙羲淵)·김가진(金嘉鎭)·안경수(安駉壽)·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