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太和: 366~371
臨朝稱制:수렴청정-섭정과 동일한 의미, 조회에 임석하고 황제의 명령과 같이 황태후의 명령
풍태후가 다시 조정에 임해 섭정으로 칭제하며 태화로 개원하고 존칭으로 태황태후가 되어 글을 알고 일에 통달해 친히 만기를 결정했다.
授兄馮熙爲太師中書監。
수형풍희위태사중서
却說伯榮母女, 奉命祭陵, 驕縱不法, 上干天變, 下致人怨。
각설백영모녀 봉명제릉 교종불법 상간천변 하치인원
?? [ji?oz?ng]교만하고 방자하다
각설하고 백영 모녀는 어명을 받들어 능묘제사를 가서 교만 방자하고 불법적인 일을 하여 위로 하늘의 변고가 있고 아래로 사람 원망이 이르렀다.
尙書僕射
却說東漢初年的高士, 最著名的是嚴子陵, 子陵已見前文。
각설동한초년적고사 최저명적시엄자릉 자릉이현전문
각설하고 동한 초년기의 고명한 선비는 가장 저명한 사람이 엄자릉으로 자릉은 이미 앞 문장에 나타난다.
後來復有扶風人梁鴻, 與妻孟光, 偕隱吳中。
후래부유부풍인양홍 여처맹광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