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교에 흥미를 느끼고 또 그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권철신․일신 형제, 정약전․약종․약용 3형제, 이벽․이가환 등이었다. 가톨릭교의 사상은 양반사회의 체제가 무너지고 전통적인 유교적 규범에서 벗어나기를 원한 당시의 사회 풍조에 안성맞춤이어서, 현실 생활을 하나의 고난으
천주교 내부의 문제, 즉 수도회 간의 대립 등을 전례 논쟁의 배경, 원인으로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주겸지 저, 전홍석 역)에서는 예수회 이후에 도미니크회를 비롯하여 프란시스코회 등의 수도회가 중국에 오게 되고, 그에 따라 선교사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업무상 마
리치는 '산해여지전도'와 '곤여만국전도'를 만들어 중국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바꾸었으며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기법'과 '교우론'을 지어 중국 지식인들의 찬사를 얻었으며 '천주실의'를 저술해 동양 카톨릭사의 교과서로 만들었다. 한국 천주교의 성립에 천주실의는 결정적
또한 이민족인 후금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서양 대포는 명나라에게는 절대적 존재였다.
중국과 서구가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데에는 무엇보다 예수회의 존재가 가장 중요했다. 예수회는 카톨릭의 한 종파로 원리원칙과 군대적 성격으로 신교에 맞서 카톨릭을 지켜낸 선교 단체다.
카톨릭이 종교를 예배나 성례전등에 종교의 가치를 둔다면 분명히 유교는 제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유교는 종교이다.
유교를 종교가 아니라 학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유교가 종교냐 학문이냐의 논쟁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의 시각 교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