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봉사로 잘 알려진 이이의 상소, 그리고 조선왕조 말기의 최익현의 상소 등 네 개의 상소를 실었다. 상소의 동기를 보면 이이의 상소는 왕의 구언교지에 따른 것이고, 이자건, 이황, 최익현의 상소는 자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상소가 모두 나랏일의 방향을 담고 있는 시무책을 적은 상소라는
만언봉사>중심으로 그의 경제사상을 고찰해보자.
유학에 있어 경제는 정치의 기초가 되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율곡도 이러한 경제를 중시하는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구체적 실천에 힘썼다. 율곡이 당시 개혁을 주장하고 각종 시무책을 제시했던 것도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고 인간의
만언봉사(萬言封事), 성학집요(聖學輯要) 등을 지어 국정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했다. 1576년에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 심화되자 그의 중재 노력이 실패하고 건의한 개혁안마저 묵살되자 낙향하여 본가와 처가를 오가며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저술하고 후학양성에 힘을 썼으며 향약과 사창법을 시행하였
만언봉사‘,등을 써서 임금과 여러 사람들이 읽게 하였으며 그 밖에 ’성학집요‘,’기자실기‘,’격몽요결‘ 등을 세상에 발표했다.
율곡은 세월 따라 사회가 달라지므로 그 때에 맞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들 뭐라고 말하기를 꺼리는 세조임금에 대해, 그 시대에 맞게 나라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