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시 사유록(梅月堂詩 四遊錄)」을 남겼다.
31세 때부터 경주의 남산(일명 금오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정착하였으며, 이 시기에 최초의 한문소설로 불리는 「금오신화」를 창작하였다.
37세(성종 2년) 때는 상경하여 수락산 기슭에 폭천정사(瀑泉精舍)를 세우고 몸소 농사를 지어 생계를
과거 실패, 그리고 패도의 등장 등으로 말미암아 깊은 좌절을 겪고 있다. 이것은 금오신화의 각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성격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바라고 하겠다. 매월당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수학 독서하다가, 21세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잡았다는 소문을 듣고는 즉시 머리
), 범중엄(范仲淹), 포증(包拯)도 모두 죽은 뒤에 염라왕이 되었다고 믿어왔다. 이렇게 속인이 염라왕이 된다고 믿는 전승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 법하다. 김시습은 그러한 민간전승을 이용하여, 현실계의 부조리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용궁부연록』에 등장하는 조강신(
금오신화」를 비롯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금오신화」는 전반적으로 전기소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의 3편은 애정소설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김안로의 「용천담적기」를 보면 김시습이 “후세에 반드시 알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1) 연구사 개관
15세기에 매월당김시습(1435~1493)에 의해 창작된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용궁부연록」,「남염부주지」의 5편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집으로,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소설집으로 인정받고 있다. 『금오신화』는 널리 알려진 대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