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주의(孤立主義)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여, ① 미국의 유럽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② 유럽의 미국 대륙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③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건설 배격의 원칙 등 3개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먼로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의 일방적 표현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국제법과
고립주의에 결합하였을 때에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n First) 정서로 나타났다.
국가탄생에 대한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예외주의는 국가의 국제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도 차별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식 팽창주의적 표현 "신에 의해 정해진 숙명"(Manifest Destiny)의 정서라든가 타국에 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지만 독학으로 역사와 문학을 폭넓게 공부했고, 뉴저지 대학에서 그는 대학 신문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며, 덕분에 글쓰기와 대중 연설에 대한 많은 공부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에서 변호 사업을 개업하려다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존스 홈킨스대학
끼친 통제력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이룩했다.
비록 이에 대한 비판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19세기 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자신만만하고 희망적이었다.
유럽인들은 옛것이 평화롭고 유용하게 새로운 것에 흡수될 정도로 인류가 지식과 이성 측면
아시아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루즈벨트의 정치적 성향을 볼 때 일본이 날조한 가공의 조약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렇게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확인 하는 것이고 둘째는 러일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