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윤리인지를 생각하려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기독교윤리의 두 번째 파트너를 선택하려 한다. 우리는 이 두 번째 파트너를 바로 ‘맥락(context)에 대한 이해’ 로 정의 할 수 있겠다. 이 두 번째 작업은 굉장히 다양한 지적작업이 수행되어져야 하는 작업이고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에
충족 시켜 주는 집단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시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으로 거룩한 언약의 영적 공동체의 의미를 갖고있다(정정숙 1984). 기독교 가정은 작은 천국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가정을 통해 안식을 누리고 친밀감을 확인 하여 사랑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교회 내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대형교회가 개척교회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게 되면서 권력구조가 생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교회의 경우는 개척교회를 원조하면서 그 교회의 인사권을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는 개척교회의 목회자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그런 문제가 아닌, 교회 간의 권
모습은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의 목회서신은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 하나님의 기준을 분명하게 들려준다.
특히 목회서신의 수신자들에게서 일어난 신령주의, 혼합주의적 이단의 시작이 거짓교사란 점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게 큰 경고가 된다.
목회와 신학과의 관계
FREDERIC GREEVES가 그의 책 {신학과 영혼의 치료}에서 지적하였듯이, 오늘날 목회사역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필요성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목회에서 실천하는 것(목회)과 믿는 것(신학)을 서로 관련시키는데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목회현장에는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