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부족의 재교육자가 된 이래로 중세의 전체 문화영역이 교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고대 후기의 교양자산과 로마문자를 받아들임으로써 독일 부족들은 문화적으로 생산적이 되었고, 동시에 초기 게르만문학에의 연결은 일시에 끊어진다. 9, 10세기 카롤링 왕조 중심의 고고독일어문학, 1025년경 오
문학 형태를 해체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 문학사
* 중세(8∼16세기)
고대 고지독일어기(高地獨逸語期;8∼11세기)의 문헌은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당시 문자로 된 중요한 것은 성서의 번역이라든지 그리스도교의 설교문 등인데, 그 밖에 고대게르만 가
문학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게르만 용사들이 전투에서 세운 공적을 찬양하는 짤막한 영웅시라든가,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적 제례와 결부된 찬가, 전투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 등이 입으로 전해지면서 후대에 널리 유포된 영웅 서사시의 바탕이 되었다. 한편 그리스도교를 보급하려는 노력에
게르만족들의 실용적인 사고방식과 엄격한 준법정신 및 질서의식 확립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독일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근면하며 철저한 모습들은, 성실하고 용감했던 게르만 문화의 뿌리를 토대로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이 더해지고 이후 중세를 거쳐 가톨릭 문화
바탕에서 전 독일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완전히 공백 상태에 빠져버림.
² 12년간의 나치지배의 종식과 함께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뒤엉킨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물 붕괴
² 제 3국이라는 천년제국의 꿈이며 ‘총통’의 권능과 전권에 대한 신뢰며 여타 민족과 종족에 대한 독일게르만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