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평양에서 향리 빙장리로 지냈다. <기러기> <병든 나비> <애> <황노인> <머리> <세레나드> <노새> <맹산할머니> <독 짓는 늙은이> 등의 단편과 시 <그날> 등 많은 작품을 써두고 8·15광복을 맞았다.
황순원은 그의 작가적 시야를 확대하면서 전후문학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황순원의 문학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작품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란 속에서 발표된 단편소설「곡예사」를 비롯하여 「어둠 속에 찍힌 판화」(1952),「학」(1953)등이 대표적인 작
황순원은 이 운동에 참여한 바는 없지만, 이듬해인 1930년부터 열심히 시를 쓰기 시작한다.
② 등단과 작품 활동
황순원은 1931년에 시 「나의 꿈」을『동광』에 발표 한 후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33년에 다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듬해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도쿄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입학했
문학이 성장과 변화의 특별한 단계로 입문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충격이나 아픔 등의 시련을 특별히 문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순원의 초기 작품들이 성인의 가열한 현실보다는 유년기의 순진의 세계에 바탕해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황순원의 이러한 통과제의적 경
문학>에 가담하였다. 1936년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동경에서 동인지 <<창작>>에 시를 발표하였다. 1937년부터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창작>>에 <거리의 부사(副詞)>를, <<작품>>에 <돼지계>를 발표하였다.
≪ … 중 략 … ≫
Ⅱ. 소설가 김유정
1908년(1세) 1월 11일 김춘식과 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