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말
전 세계 나라에서 20세기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기 위한 거대한 행사가 열렸다. TV중계 프로그램을 보거나 또는 당일 행사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새천년은 이렇게 지구상에 살
문화적 제국주의를 통한 문화적 식민화를 시도하려 했다.
물론 근대화 과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당시 일본을 통한 근대문화가 형성되었던 큰 이유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유럽보다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일본어로 된 서양문화 관계 서적들을 읽어 일본식으로 소화된 신문화를 받아들였
문화의 잡종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신식민지에 저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호미 바바는 피지배 문화의 잡종성에서 식민지 담론의 극복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은 피식민지인들로 하여금 서구의 문화를 모방하게 함으로써 개화를 이룩하려 하였지만, 흉내내는 피
교양가곡과 대중가요가 함께 등장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은 통계적 수치 이상이었다. 이영미, 1993, 「식민지 대중문화와 대중: 대중가요」,『역사비평』20호 376쪽.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대중가요 연구는 당시 민중들의 가치관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상황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으며, 중국인들은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변혁뿐 만 아니라 의식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신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지식인에 의한 문화혁명이라 불리는 五·사운동은 군벌정치와 제국주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