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보다 더 비극적이다. 그런데도 황진이는 시, 설화, 소설, 오페라, 연극, 영화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인물이다.
북한소설황진이의 작가는 홍석중과 이태준이다. 홍석중의 황진이는 종래의 북한작품이 가진 이념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본격적인 역사소설로서 손색이
황진이가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인물이었다는 의미이다. 황진이는 남성중심사회의 여성이었으며 양반중심의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하층에 해당하는 기생신분이었다. 주변부적 인물을 통해 그 사회의 중심을 그리고자 하는 소설의 특성 때문에 황진이가 주목받는다는 주장이
론 논리적 일관성에 얽매여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도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의 내적 계기가 충분히 따져져야 한다는 지적 역시 옳다. 특히 이태준의 초기작에 보이는 현실인식의 직접적인 표현은, 순수문학 개념을 고정된 것으로, 혹은 이념의 존재여부로만 바라보는 방식에
이태준의 황진이가 유명하다. 홍석중의 황진이나 남한에서 간행된 황진이도 모두 이태준의 작품을 벤치마킹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태준의 장편소설황진이는 1936년 6월 2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하지만 그 해 9월 4일 연재가 중단된 후 후에 이태준문학전집 12권으로 얼굴을 새로
믿는 김정일의 창작지침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그 외에도 최근의 북한의 상층부의 테크노크라트로 부상하고 있는 30~50대의 인텔리계층이 모두 러시아나 중국 등 외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 따라 이들을 통한 어느 정도 개방적인 동, 서구 문화의 유입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