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가 18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양반 지식인층에까지 침투하게 되어 향유층을 확대하였고, 또한 지역적으로도 발생지인 호남, 호서지역을 넘어 서울에까지 확대되었다.
판소리의 전성기였던 19세기에는 수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어 그들의 사회적 위상도 크게 향상되고 판소리 레퍼토리도 12바탕으
민속적이며 그 체제는 소설적이기보다 희곡적이며, 문체는 운문체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구비서사문학으로 본다.
풍자와 해학 등 골계적인 내용이 풍부하게 구사되어 있다.
③ 판소리 열두 마당과 다섯 마당
판소리로 가창되던 12편의 작품으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토별
지난 시절의 이야기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가운데도 현존하는 전문적 이야기꾼에 대한 조사 보고 성과는 이야기꾼의 설화 텍스트에 대한 실제적․경험적 검증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삼아 이야기와 판소리의 관계에 접근해 갈 수 있다.
판소리 사설은 광대들에 의해 구비 전승이 활발하게 되는 한편 소설 애호가들에 의해 소설로 정착되었다. 노상예, 「<춘향전>과 <춘향가>의 수업모형 비교 연구」, 고래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p.5
판소리계 소설은 항상 판소리와 함께 논의되며 그와의 관계를 뗄 수 없다. 판소리의 어의는
민속마당종목 등 각 분야에 걸쳐 공연 횟수는 증가하였다. 주체별 공연에 있어서도 국악관현악단, 실내악단, 교육단체, 개인 연주회 공연 횟수가 지난해에 비하여 증가하였다. 국내공연이 증가한 요인으로는 대중을 위한 상설공연의 증가와, 전통공연을 문화상품화하여 6일간 상설무대화한 정동극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