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밀로세비치는 세르비아의 대통령으로 재선된다. 이 때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사회당을 창당하게 되고, 그 당수로 취임하게 된다. 1997년 밀로세비치는 마침내 유고연방의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Slobodan Milošević
Josip Broz Tito
<연합을 추구한 티토 vs 민족을 강조한 밀로세비치>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으로 건국되었으며, 1929년에는〔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으로, 1963년에는〔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탈바꿈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유고는 티토의 화합적 리더십과 카리스마
Ⅰ. 코소보사태(코소보분쟁)의 과정
1945년 티토 주도하에 구유고슬라비아 성립 후에는 코소보에 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하였으나, 1989년 밀로셰비치세르비아 대통령은 `대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기치아래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전체 200만 주민의 90%)은 이에 대항
세르비아인들이 타 민족공화국의 분권화와 민주화를 견제함으로써 갈등이 내재되었다. 1987년 이후 과격한 민족주의자인 밀로세비치의 등장과 1989년 동유럽전역에 밀어닥친 민주화의 물결에 의해 연방에 내재해있던 민족 간의 갈등으로 폭발했다. 결국 1990년 1월 유고공산당 14차 당 대회에서 세르비아
세르비아 왕국은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국명을 바꾸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주도하는 주축군은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뒤 분할 강점하였다. 세르비아의 대부분은 독일이 점령하였다. 티토가 이끄는 일단의 공산주의자들은 점령군을 몰아낸 뒤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