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방향과 경계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본능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인식의 행위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리고 - 매우 종종 - 인과 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이유로 인하여 예상을 빗나가는 인식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의해, 경험에 의해, 그리고 일반적으로
바따이유를 ‘미치광이’ 라고 조소하곤 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미셸 푸코는 바따이유를 일컬어 ‘당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 이라고 평가하였으며 푸코 외에도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바따이유에 관한 논의는 유행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고 한다. 유기환,《에로티즘의 기원과 역
계급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에로티즘을 특권에 종속시키는 매춘이 등장함으로써 에로티즘은 왜곡되기에 이른다. Ibid.,p163
금기에 대한 위반으로서의 ‘종교적 매춘’과 구별되는 ‘천박한 매춘’은 신성한 의미를 제거 당한 채 오직 타락과 불경의 의미만을 가진 에로티즘의 왜곡된 모습이었다.
해방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에 큰 관심을 두고, 무의식을 통해 이성이 세운 세계를 전복시키고자 한 운동이 바로 초현실주의이다. 그리고 바따이유는 초현실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따이유는 성적 소모를 통하여 인간세계의 노동적이고 합리
죽음 본능을 표출한다. 죽음의 대가는 존재 그 자체이며 억압된 존재의 폭발이 바로 창조적 에로티즘의 근원인 것이다. 바따이유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격앙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의 존재를 파괴하는 것은 그 존재를 격양시킨다.”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