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과 방향제시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음 : 르 꼬르뷔제의 순수파(Purism,1917), 모스코바 말레비치(Malevich) 등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 로테르담의 몬드리안(Mondrian) 및 반 되스레르그(van Doesburg) 등의 신 조형주의(new
plasticism)와 데 스틸(De Stijl), 1919년 그로피우스에 의한 바우하우스 운동 등에 영향
이들 두 사람의 동시대 회화에서 발견되고 있다.
입체파 건축
입체파는 예술적 사조에서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파벨 야낙은 이러한 추세에 공헌하였으며 소위 건축학적 큐비즘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였다. 그와 몇 몇 동료들은 1911-1914의 기간동안 이
건축안’ 등 초고층 건축안을 발표하는 등 『유리와 철의 美』를 창시한 근대건축의 거장으로 현대도시의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에서 도시가 규격화되고 천편일률적인 고층 건물이 채워지는데 크게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관은 ‘단
건축가들은 건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보다 다원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근대디자인 이념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조형철학을 제시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조형철학이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극단적인 장식성의 배제, 지나친 기능주의 추구에 반발하여 건축, 예술에
건축양식을 은밀히 도용하고 있다는 것과 그 도용된 사조들이 작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정문의 맛배지붕을 16세기 매너리즘의 특징인 오픈 게이블(gable) 혹은 페디먼트(Pediment)의 형식을 취한 것 등은 모더니즘 건축의 탈 역사화와는 전혀 다른 신 역사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