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 우리안의 파시즘을 밝히는 길이며, 이를 분쇄할 때 진지전에서의 승리도 가능하다. 체제의 헤게모니에 대한 민중의 수용방식은 체제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동의에서 수동적 동의, 부분적․선별적 수용, 타협적 순응, 무의식적 순응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방향에 따라 정부에 이득이 되거나 손해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독재정권에서는 대중문화를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시대까지만 해도 대중문화에 대해 엄청난 통제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시기에는 3S정책을 펼치면서 대중문화를 통제하려고
과거 김대중대통령의 언론관은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을 통해 나타났다. 그는 새정부의 대언론정책과 관련하여 ꡒ김대중대통령은 권력은 마약과 같아서 (과거처럼) 언론에 대해서 쉬운 길을 가면 안된다는 입장ꡓ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ꡒ정부는 과거처럼 언론에 대해 간섭하고(길들이기
북학의 대남 도발 회수는 1967년 829건, 1968년 761건이었지만 1969년 134건, 1970년 106건, 1971년에는 58건으로 계속 감소했다. 또한 북한의 대외정책 역시 1969년 하반기부터 전과 달리 일본 및 유럽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미국과의 접근도 모색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위원회, 위의 책, 2~3쪽
박정희 군사정권이 ‘근대화’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정책 추진, 1960년대 초부터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수출주도의 고도성장 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얻으면서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대중사회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상품화된 대중문화의 시대로 접어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