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화운동, 통일촉진운동으로 전개되어 반공분단국가의 근본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8기생들은 1960년 9월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일단의 군부 세력이었다. 이들은 ‘조국근대화’, ‘민족중흥’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제개발계획을 비롯한 각종의 국가정책을 통해 한국사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정희 체제’는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기반한 ‘국민국가-국민경제’ 형성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각 대학의 깃발에는 ‘민족고대’, ‘애국한양’ 등과 같이 좌익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와 갖는 관계 : 대한민국의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혈맹 미국’과 ‘반공’을 내세우는 국가주
아니었다. 오죽하면 인도적인 지원조차 ‘대북 퍼주기’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그러한 자본주의와 국가 자체는 아닐까.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과 많은 부분 통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는 한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