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 문제를 제기한 당 비주류의 견해가 참고 되어 점진적 농업협동화의 방향으로 정리된 것이다.(김성보, 2000: 290-1)
이후 1954년 11월 3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제기한 농업집단화 방침이 확정되었다. 김일성은 인민들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발전을 공업의 발
북한은 내심 중국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소련의 경제지원이 필요했기에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중소분쟁이 격화되면서 북한은 점차 중국을 편들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은 중국공산당 출신이고, 또한 6.25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린 중국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북한사회주의경제의 운영은 자급자족적 경제체제를 지향하여 중공업, 경공업, 농업 등을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정책을 견지하여 왔다.
이러한 사정아래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달성하기 위한 각종제도
의 부진을 초래하여 경제성장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공업을 우선시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도록 함으로써 소비재보다 생산재 생산에, 소비보다 자본축적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편 북한은 62.12 노동당 중앙위 4기 5차회의에서 중·소분쟁과 쿠바위기 대처방안으
경제의 동력 자원으로서 생산 활동 및 경제 성장과의 직접 상관관계 갖기 때문에, 에너지의 위기는 북한의 전 산업을 마비 시켰다. 한 부문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그것은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연관된 공장의 가동도 중단되기 때문이다. 생필품의 부족사태와 함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농업생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