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석 시인을 알 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정기구독하고 있던 한 월간지에 박목월 시인이 연재하고 있던 시 창작 강좌를 통해서이다.
거기 백석 시인의 「오리 망아지 토끼」와 「여우난골」 그리고 「비」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나는 단박에 백석이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로는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아울러 활약했던 단체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시문학파, 서정주, 오장환, 백석 등이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1930년대는 조선이 대외, 대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민족성과 전통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기이다.
백석의 시세계에 등장한 민중제의 및 놀이를 바흐찐의 카니발 이론 등과 접목시켜 검토해 보았다. 백석의 시세계에서는 30~40년대 어느 시인들보다 집안의 기제사나 동제 등 카니발적 공간이 다수 등장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카니발 공간의 구체적인 양상을 점검하는 한편, 그것이 시적 완성에 어떻게
80년대 중반까지 한국문학사에 단 몇 줄로 기록되던 백석과 그의 시는 요절해버린 시인 기형도가 1987년 신문지상에 소개함으로써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 취해진 재북?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는 풍속의 세계 속에서 웃음 짓는 백석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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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는 이광수 김소월 등 한국문단의 대가들이 태어난 곳으로,남강 이승훈 등에 의해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지역이었다. 백석은 남강이 설립한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서구문화를 접하고 국내에 돌아와 신문사와 잡지사 등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