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사의 벽두를 장식한 『시문학』을 주재한 일과, 또 세칭 ‘기교주의 논쟁’으로 일컬어지는 임화와의 논쟁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인이다. 김영랑 정지용 등 이른바 시문학파의 순수시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여 시문학 이론가로서는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실제 시작품에 있어서는 그에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우리 문학은 전통의 기반 위에 서있다. ‘전통은 부단히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과 함께 역동적으로 전해 내려가는 것으로 한 나라의 문학이 전통을 아무리 부정하려 안간힘을 써도 전통은 우리 피 속에, 삶 속에 온전히 살아남아 전해진다. 때문에 삶을 표현하는
1. 표현론적 관점
1) 백석의 생애
1912년∼1963년.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라는 아호(雅號)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백석(白石)’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
.......................이 시가 화합과 축복의 장면으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이 시의 아름답고 행복함이 현실의 지평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몽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는데 문제의 중요성이 있다. 언제까지나 눈이 푹푹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혼자 소주를 마시며 꿈에 젖어드는 일도 일정한 시한이
착수하여 그 후반에 일반 독자에게 정리된 전집이 소개되었다. 그가 사상적 신조로 인해 월북했든 순수한 귀향의 의미였든 그것은 논외의 대상이다. 다만 백석이 분단문학사를 극해야하는 우리 문학사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는 시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연구자가 백석에게 주목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