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왕릉과 왕족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유적으로 풍수지리에 적합한 지점에 묘지를 선택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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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들어서자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송산리 고분군 모형관 이었다. 이 곳은 관람이 폐쇄된 무령왕릉 및 5,6호분을 정밀하게 재현하여 축조한 전시관으로
호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벽돌무덤 1기가 발견되었다. 무덤입구는 벽돌과 회로 빈틈없이 밀봉되어 있었고,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은 처분이었다. 무덤의 입구에는 왕과 왕비의 지석 2매가 놓여 있었다. 지석에는 백제 무령왕과 왕비가 돌아가셔서 이곳 대묘에 안장했다는 내용이 수려한 남조풍(南朝
고분의 발굴부터이다. 계속해서 1994년 광주시 명화동고분에서도 상당량의 원통형토기가 분구 주변에서 열을 지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이 특수한 토기는 분구 주변에 분포하여 세워졌던 것이 명백하다. 1995년에는 나주 복암리 2호분의 분구주위에서도 호형(항아리)의 특수토기가 출토되어, 고분의 분
백제국 세력ㆍ稷山(직산)의 목지국 세력ㆍ익산의 건마국 세력ㆍ영산강 유역의 新彌국세력 등은 지역연맹체를 형성한 중심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직산의 목지국 세력은 이러한 지역 연맹체를 형성한 세력 중에서도 가장 우세한 세력으로서 많은 추종소국을 거느린 세력이었고 그 기반위에서
고분군은 대부분 파괴되어 남아 있는 유물은 많지 않지만 7기의 무덤이 발굴되어 석실 구조와 함께 유물의 출토 상태를 분명히 알 수 있어서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 대단히 귀중한 것임이 밝혀졌다. 화명동 고분군 7기중에서 5호분의 무덤은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수혈식 석실묘로 만들어진